좌익 관점에서 쓰여진 미국 대공황 이후의 역사서 - 폴 크루그먼

경제는 가진 자를 위해서만 돌아간다.. 능력있는 사람은 옛날부터 후한 보상을 받긴 했지만, 현재에 와서는 터무니 없을 정도로 많은 보상을 받고 있다. 결과의 불평등은 양극화되었고, 부가 세습됨에 따라 그에 따른 기회의 불평등도 격심해졌다. 이런 사회의 부조리함을 자녀에게 세습시키고 싶지 않은 부모들이기에, 그래서 그토록 많은 교육비를 자녀들에게 지출하게 되는 것이다..

과거에도 이랬던가? 결코 그렇지 않았다. 1929년의 대공황 이후, 집권에 성공한 민주당이 펼친 뉴딜 정책으로 인해 1920~50년대 미국에서 벌어진 소득격차가 줄어드는 현상, 즉 부유층과 노동자계급의 차이가 급격히 줄고 노동자 사이의 임금차도 줄어든 현상을 가리켜 폴 크루그먼은 '대압착'이라고 정의했다.


- Contents -
1. 뉴딜정책의 평가
2. 공화당은 어떻게 치즈를 뺏었는가?
3. 앞으로 나아갈 길
4. 총평




1. 뉴딜정책의 평가

까놓고 말해서, 이 책은 철저히 좌익의 관점에서 쓰여진 책이다. 미국 근대 경제의 위기였던 대공황을 타개하기 위해, 1933년 막 집권에 성공한 민주당의 루스벨트 대통령은, 뉴딜 정책으로 경제를 살려놓고 그로부터 16년이나 되는 오랜 집권기간동안 미국의 경제 불평등을 해소하기 위해 한 몸을 바친 대통령으로 인정받고 있다. 그는 오늘날의 좌익 운동가들에 비하면 매우 파격적인 연설을 했던 것으로 유명하다. 아래는 책에 실려있던 루스벨트 연설문의 일부를 그대로 옮긴 것이다.

우리는 오랫동안 평화를 위협하는 적, 즉 산업과 금융 분야의 독점, 투기, 분별없는 은행의 관행, 계급 간의 대립, 파벌주의, 전쟁으로 부당이득을 챙기는 이들과 투쟁해야 했습니다. 그들은 미국정부를 자기 사업을 돕는 조력자 정도로 생각했습니다. 조직적으로 조성된 자금 위에 세워진 정부는 조직범죄단이 만든 정부만큼 위험한 법입니다. 미국 역사상 그들이 지금처럼 한 후보에 대항해 이렇게 힘을 모은 적이 없습니다. 그들 모두는 저를 증오합니다. 그러나 저도 그들과 싸울 준비가 돼 있습니다.

금권주의자들의 미움을 받는 대통령 루스벨트란 말 그대로, 그는 24%였던 소득세의 상한율을 첫 번째 임기에서 63%로, 두 번째 임기에선 79%까지(오늘날 부시 정부에는 35%) 올렸다. 그 뿐 아니라 기업 이익에 부과되던 14%도 안 되던 연방세를 45%까지 올리고, 20%에 그쳤던 상속세를 77%까지 올려 진정한 기능을 부활시켰다. 뉴딜정책은 부자들의 소득 거의 전부를 세금으로 거두어갔다. 부자들을 훨씬 더 가난해졌고, 그 대가로 빈곤이란 단어도 사라졌다. 모든 국민을 위한 일자리가 있는 듯했고, 넘치는 일자리는 어느 때보다 높은 임금을 지불했으며, 그것도 매년 인상되었다.

더구나 재미있는 점은, 이 뉴딜정책이 시행 초기에는 도박적인 정책이라며 많은 지탄을 받았지만, 민주당 장기집권 말기인 50년대에는 공화당에서도 이를 인정하고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였다는 것이다. 민주당의 정책에 반대일색인 오늘날의 공화당원과는 달리, 찬성표를 던지는 공화당원도 있었고 반대표를 던지는 민주당원도 있을 정도로, 당을 넘어선 초당적 제휴조차도 의미가 있던 시절이자 정치시대의 황금기였다.


2. 공화당은 어떻게 치즈를 뺏었는가?

이렇게 대공황을 타개한 뉴딜정책의 가치를 재확인하고 당시의 정치적 분위기를 조망하는 부분까지가 이 책의 초반부다. 이후 이어지는 책의 중반에서는, 그렇다면 어떻게 공화당이 사회의 무게중심을 완전히 좌측으로 기울인 민주당을 이기고 집권에 성공했는지, 그리고 그 이후 어떤 과정을 거쳐 지금처럼 우익화된 사회가 완성되었는지에 대한 과정을 탐구하고 있다.

레이건은 캘리포니아 주지사 후보로 나서면서 주공정주택법을 무효화겠다는 공약을 내걸었다. 그는 이렇게 말했다. "여러분이 만약 집을 팔거나 빌려줄 때 흑인들이나 다른 사람들을 차별하고 싶다면 그럴 권리가 있습니다."

그랬다. 여러분도 아시다시피, 미국은 단지 인종주의란 이유로 남북전쟁이란 소모전을 치뤘다. 그 이후 인종차별을 금지하는 각종 법안들이 속속들이 제정되었지만, 미국 전역의 관습법으로는 여전히 인종차별이 성행했던 것이다. 민주당의 오랜 집권기간동안, 인종차별을 묵인하는 짐 크로법을 폐지하기에 이르렀고 이것이 남부 백인들의 반발심을 불러왔다.(주 : 특히 남부의 조지아 주는 인종차별이 극심한 주로 유명하며, 바로 밑에 부시의 부정선거에 휘말렸던 플로리다 주도 있다)

남부가 전체적으로 부유해짐에 따라 부의 재분배를 위한 정책은 더 이상 큰 이익을 주지 못했고, 따라서 남부 고유의 보수주의적 본능을 충족시킬 수 있는 흑인의 선거참여 배제를 만끽할 수 있게 된 것이다. - 본서 94쪽
제 2장에서 지적한 바와 같이, 길었던 도금시대에는 저임금 노동자의 상당수에게 투표권을 부여하지 않음으로써, 대량이민은 길었던 도금시대에 보수주의가 계속해서 주도권을 행사하는 데 도움을 주었다. - 본서 245쪽
사실 민주당에게 투표할 만한 유권자, 그 중에서도 주로 아프리카계 미국인들의 합법적인 투표를 막는 방법은 무엇이든 가리지 않는 투표방해가, 보수주의 운동이 공화당을 장악한 이후 공화당이 일관되게 추구해 온 전략이란 것에는 의문의 여지가 없다. 2000년 공화당 출신의 플로리다 주 내무부장관, 캐서린 해리스는 <뉴욕 타임즈>가 '유권자들의 대량 숙청'이라고 부른 사건을 주도했다. 그녀는 주로 무고한 흑인들을 중죄인이라며 선거인 명부에서 제외시켰다. 이런 일이 없었더라면 부시가 대통령이 되기는 어려웠을 것이다. - 본서 247쪽, "How America Doesn't Vote," New York Times, Feb. 15, 2004, sec.4, p.10.


민주당이 경제공약을 내걸고 당선된 뒤 장기집권 중에 인종차별에 대한 의견을 선회하였다면, 공화당은 인종차별에 대한 공약으로 당선된 뒤 경제에 대한 의견을 선회한 케이스라고 크루그먼은 설명하고 있다. 1966년대의 공화당은 국민의료보험까지 도입하려고 할 정도로, 지금보다 훨씬 온건하고 진보적인 정치를 펼쳤다. 그런 공화당이였기에 집권에 성공할 수 있었지만, 이후 우익적인 성향이 짙은 보수주의 운동이 당을 지배하기 시작하면서 부자들을 위한 정치가 시작되었다.

미국의 평균 노동자 2만 명의 연간 총소득보다 많이 버는 자를 '억만장자'라고 정의하고 이들이 얼마나 많은지 조사한다면, 1900년에는 22명, 1925년에는 32명이 있었지만, 이는 진보주의 시대까지 증가한 인구와 비례하므로 수치의 증가에 큰 의미가 없었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1957년에는 많은 억만장자들이 사라져 16명이 되고, 1968년에는 13명으로 줄었다. 하지만 오늘날에는 무려 160명 정도로 추산된다고 한다-_-;


3. 앞으로 나아갈 길

2006년 민주당이 중간선거에서 승리하였고, 이어지는 대선에서의 승리도 확실시된다면서 크루그먼은 벌써부터 민주당의 승리를 자축하고 있다. 민주당은 현재 상하원 모두에서 다수당이자 주지사에서도 과반 이상을 점하고 있으며, 버락 오바마까지 백악관에 입성한다면 당분간 공화당의 간섭 없이 자신들의 입맛에 맞는 정치를 펼 수 있을 것이다. 그에 준하여, 크루그먼은 민주당에게 선결과제를 제시하고, 이후 필요한 경제개혁들을 소개하고 있다.

가장 먼저 해결되어야할 선결과제는 바로 의료보험의 국영화라고 크루그먼은 말하고 있다. 민영화된 의료보험은 그대로 두지만, 국가의 단일 의료보험과 경쟁하게 되면 경쟁력에서 뒤처지는 이들은 자연탈락하게 될 것이라고 예측하고 있다. 프랭클린 루스벨트가 사회보장제도와 실험보험을 처음 만들었던 것처럼, 의료보험제도를 국유화하는 데 성공하면 "중앙집권적인 복지국가 정책의 재탄생을 알리는 신호탄이 될 것"이라고 크루그먼은 말하고 있다. 그렇게 함으로써 사회의 중심이 '어려운 사람들을 도와야 한다'는 쪽으로 이동할 것이고, 이후 논의할 복지제도에도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부시 행정부가 추진했던 상류층들을 위한 각종 감세정책들을 폐지하고 세율 상한을 인상하는 등, 새로운 진보주의 운동이 성공하면 당파성은 결국 줄어들게 될 것이다. 1950년대의 국민들이 사회보장제도와 노조를 지지하면서도 공화당의 아이젠하워에게 투표할 수 있었던 것은, 일시적이긴 했지만 공화당이 뉴딜의 성과를 받아들였기 때문이다. 궁극적으로 크루그먼은 그 시대와 같은 정치로 돌아가길 바란다고 말한다. 분별있는 두 정당이 미국을 위한 최선책은 모두 받아들이고, 모든 국민들이 남부럽지 않은 삶을 살 수 있게 두 당이 공정하게 겨루던 그 시대로 말이다. 이것이 진보 지식인이 꿈꾸는 진정한 민주주의의 모습일 것이다.


4. 총평

이 책을 읽으면서 나는 몰랐던 사실을 알아나갔다기 보다는, 마치 미국의 역사서 한 권을 본 느낌이었다. 1920년대 대공황을 뉴딜정책으로 풀어나갔다는 이야기는 전부터 익히 들어서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것은 경제학 원론의 관점에서였을 뿐이며, 당대 서민들과 부자들의 의견이 어떠했는지에 대해서는 거의 몰랐다고 해도 좋을 것이다. 하지만 이 책을 읽음으로써 그에 대한 지식도 습득할 수 있었고, 무엇보다 시대의 변화가 부른 대압착 혹은 경제 양극화에 대한 상식들을 재확인하면서, 이제는 과거 사례를 인용하더라도 좀 더 명확히 알고 인용할 수 있을 것 같다. 이 책은 바로 그러한 책이다.

책의 초반부인 뉴딜의 성과에 대해 알아보는 시간은 매우 흥미롭게 읽힌다. 이렇게까지 민중에게 깊이 뿌리내린 민주당이 어떻게 공화당에게 정권을 내주었지? 에 대한 의문을 점점 증폭시켜, 그에 대한 궁금증을 해결하기 까지는 정말 즐겁게 읽었다. 하지만 중반에서 공화당의 각종 악행을 소개하는 자리는 매우 지루했다. 마지막의 대안제시는 그럭저럭 읽을만 했고, 직업적으로 배울 점도 많았다.

경제학을 이제 막 접하고자 하는 사람에게 이 책은 조금 이를 수도 있다. 하지만 일단 입문을 했고 경제학 원론 교과서까지 독파한 사람이라면, 이 책은 하루라도 빨리 읽어보는 것이 좋겠다고 생각된다. 경제에 대한 단편화된 지식들을 자연스럽게 하나로 최적화시켜줄 것이다.

마지막으로 아쉬운 점이 있다면, 이 책은 미국 근대사를 순차적으로 다룬 만큼 이에 대한 연표가 있었다면 훨씬 좋을 뻔 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좌익 의견을 위주로 제시하긴 했으나, 아직 우익에서 쓰여진 책을 본 바가 없으므로 얼마나 기울어져 있는지는 자세히 알지 못한다. 다만 자신의 논지를 강화하기 위해 우익의 반론들과, 이에 대한 저자의 재반론도 나름 소개하고 있으니 참고.

책을 읽고나니, 정말 머리가 개운해진 느낌이었다. 디스크 조각모음을 주욱 돌려준 느낌이랄까? 전에 읽었던 경제학 서적들도 지금 다시 본다면, 전에는 못 봤던 내용들을 많이 찾아낼 수 있을 것 같은 기분이 든다. 또한 이 책이 지닌 좌익 관점이란 한계로 인해, 이제는 우익 관점에서 쓰여진 경제 역사서를 하나쯤 읽어보고 싶어졌다. 그린스펀 자서전이 있던데 그것 혹시 괜찮으려나-_-;

by FINA | 2008/07/24 02:39 | 경제&밸런싱 | 트랙백 | 덧글(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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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ed by 로토 at 2008/07/24 03:16
흥미로운 책이군요.
Commented by FINA at 2008/07/24 12:13
넵 특히 요즘 같은 한나라당 집권기에 읽어봄직한 책... 일지도-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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